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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4.

    by. windy21

    목차

      – 한국 고대 가요의 음악 구조와 미학적 가치 탐구–


      1. 신라의 소리, 향가: 종교와 정서가 어우러진 음악 언어

      향가는 신라시대(6세기 후반~10세기 초) 불교문화의 심층과 결합한 문학·음악 장르로, 단순한 서사시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향가(鄕歌)’는 문자 그대로 ‘고향의 노래’, 또는 ‘토속적인 노래’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실제로는 신라인들의 정서, 신앙, 정치적 이념을 포괄하는 복합적 음악 형태였다.

      향가의 형식은 주로 4구체, 8구체, 10구체로 구분되며, 이는 음률 구성의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10구체는 3·4·3 구조로 구성되며, 이는 후대 고려가요나 시조의 운율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음계는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오음음계(五音音階, 궁·상·각·치·우)**를 바탕으로, 동양 음악 특유의 장식적 음색과 잔잔한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향가의 대표작인 「제망매가」는 불교적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음악적으로는 고요하면서도 영적인 음조를 통해 감정의 진폭을 조절한다. 이는 후에 불교 음악과 가창 형식이 융합된 범패와도 유사한 구조를 보이며, 구송(口誦) 중심의 악보 없는 시대에서 음악의 정서를 언어로 보존한 중요한 예이다.

       

      아래 다이어그램은 향가의 형식 구조와 음악적 운율 구성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향가 10구체 구성 도식]
          ┌─────┬─────┬─────┐
          │ 제1행 │ 제2행 │ 제3행 │
          │ 3구절│ 4구절│ 3구절│
          └─────┴─────┴─────┘
             → 전통 음계(5음): 궁·상·각·치·우  
             → 주요 정서: 불교적 평온함, 내면적 성찰


      2. 향가의 음악적 구현 방식: ‘입겻’과 ‘사뇌가’의 가창법

      신라의 향가는 문자로는 한자로 기록되었지만, 실제 가창 시에는 이두식 표기와 입겻(입겿)이라는 음가 중심의 창법이 사용되었다. 이는 단어의 의미보다는 음운적 리듬과 억양을 중시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고대 한국어의 운율적 특성과 음악적 표현력을 극대화했다.

      가창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사원 중심에서 불교 의식과 함께 불렸던 사뇌가(詞腦歌)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적 주제로 향민들이 부르던 향가다. 사뇌가는 느리고 장중한 음조를 중심으로 하며, 일정한 장단(長短) 패턴을 유지해 신비롭고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이와 달리 민간 향가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반복적 리듬을 가지며, 집단적 가창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

      향가의 음악적 복원은 현대까지도 정확한 멜로디를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삼국유사』와 『균여전』 등을 통해 당시 사용된 가창법과 음률 체계를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향가가 단순한 시가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정형화된 노래임을 확인하게 된다.


      3. 고려가요의 등장: 민속과 궁중을 아우른 음악적 진화

      고려시대(918~1392)는 향가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음악 장르인 고려가요가 등장한 시기다. 고려가요는 고려 전기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했지만, 중 후기에는 보다 세속적이고 민속적인 정서로 변화한다. 이 시기의 가요는 궁중 음악으로도 발전하였으며, 동시에 민간에서도 광범위하게 불렸다.

      대표적인 고려가요에는 「청산별곡」, 「가시리」, 「정과정」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대개 후렴구 반복 구조를 지니며, 이로 인해 집단적 가창이 가능하고 리듬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음계적으로는 향가와 마찬가지로 오음음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일부 곡에서는 7 음계적 확장장단법의 도입이 확인된다. 이는 송나라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이며, 향가보다 더욱 서정적이고 음악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형성한다.

       

            [향가와 고려가요 비교표]

      구분 향가 고려가요
      시대 신라 ~ 통일신라 고려 전기 ~ 후기
      대표 형식 10구체, 사뇌가 후렴 반복, 정형시 형태
      음계 오음음계 오음음계 + 7음계 확장
      정서 종교적, 내면적 세속적, 서정적
      가창 방식 입겻, 구송 집단 가창, 선창·후렴 구조
      대표 작품 제망매가, 안민가 청산별곡, 가시리, 정과정

      4. 고려가요의 가창과 악기: 음악 예술의 복합적 체계

      고려가요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음악·문학·무용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었다. 궁중에서의 가요는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의 이중 체계로 분화되었으며, 이는 향토성과 외래성을 동시에 반영한 결과였다. 특히 ‘향악정재’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궁중 무용과 가요의 결합은 고려 후기 문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악기 구성 또한 향가와는 다르게 점차 현악기(가야금, 거문고) 및 타악기(박, 축)의 사용이 두드러졌고, 이를 통해 가창의 리듬과 정서 표현이 보다 풍부해졌다. 민간에서는 소규모 악기 반주에 맞춰 여성 가객이 가요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는 조선 초기의 ‘기녀 문화’로 이어진다.

      이 시기의 음악은 형식 면에서 반복과 대칭 구조를 선호했으며, 이러한 형태는 현대 한국 가곡과 대중가요의 멜로디 패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고려가요는 단지 ‘옛 노래’가 아니라, 한국 음악 언어의 변천사에서 매우 중요한 진화의 단계라 할 수 있다.

      고려가요


      5. 고대 가요의 문학성과 음악성의 융합

      향가와 고려가요는 문학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음악 작품으로서의 구조적 미학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들은 ‘음악 없는 가사’가 아니라, ‘음악을 전제로 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리트(lied)와 유사하다. 문학과 음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대에서, 이들 가요는 감정을 음률로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특히 향가의 운율 체계와 고려가요의 후렴 반복 구조는 후대 한국 시가 문학의 기본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조선시대의 시조는 향가의 운율과 고려가요의 가창 기법이 결합된 결과물이며, 이는 오늘날 한국어 가사 기반 음악의 리듬 및 정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6. 오늘날의 의의: 고대 음악유산의 재해석과 교육적 활용

      오늘날 향가와 고려가요는 단지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국악 교육과 창작 국악의 중요한 자산이다. 향가의 음률은 현대 작곡가에게 미니멀리즘적 영감을 주며, 고려가요의 반복적 리듬은 국악가요와 퓨전 음악의 기초로 활용된다.

      또한, 초·중등 음악 교과서에서도 「가시리」나 「청산별곡」을 학습하며 고대 음악의 정신과 정서를 체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교육적 접근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 감수성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향가와 고려가요는 고대 한국인의 음악적 표현 방식과 집단 정서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를 단순히 과거의 노래로 볼 것이 아니라, 현대 창작과 문화교육의 밑거름으로 적극 활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 고유의 음악미학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