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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3.

    by. windy21

    목차

      1. 후기 베토벤, ‘고전의 종언’과 ‘근대의 서막’ 사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후기 작품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음악사에서 ‘형식 해체’와 ‘표현 확장’이라는 전례 없는 실험이 시작된 지점이다. 초기와 중기의 베토벤이 고전주의의 전통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세웠다면, 후기 베토벤은 그 전통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가득하다. 특히 현악 4중주 Op. 130~135, 피아노 소나타 Op. 106~111, 그리고 교향곡 제9번은 기존의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연다.

      후기 베토벤의 작곡 기법은 단순히 규칙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이는 낭만주의의 시작이자, 현대 음악으로 향하는 분기점으로 기능한다. 오늘날까지도 이 시기의 작품은 분석가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음악은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가?”, “형식은 어디까지 해체될 수 있는가?”, “음악은 청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2. 구조의 해체: 전통 형식 속 자유로운 개입

      고전주의 작곡 기법의 핵심은 정형화된 소나타 형식, 주제 발전부, 대위적 처리와 같은 규칙성에 있다. 하지만 후기 베토벤은 이 ‘형식의 틀’을 안에서부터 흔들었다. 예를 들어 피아노 소나타 Op. 111은 두 악장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3~4악장 구조를 따르지 않고, 제2악장은 약 20분에 달하는 아리오조 형식으로 확장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 자체를 철학적으로 묘사한 듯한 서사다.

      다음은 전형적인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과 후기 베토벤의 변형 구조를 비교한 표다:

      구성 요소 전통 소나타 형식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 111
      제시부 1·2주제 제시 1악장 내에서 대조적 동기 활용
      전개부 주제 변형, 조성 확장 주제 발전보다 리듬·색채 전개
      재현부 제시부의 재현 1악장 내 부분 재구성
      악장 수 3~4개 악장 단 2악장으로 구성
      마무리 방식 코다, 정형적 마침 아리오소로 점진적 소멸

      이처럼 후기 베토벤은 ‘형식을 구조화’하기보다, ‘형식 안에서 의미를 해체’하며 새로운 음악적 사고를 제안했다.


      3. 화성과 조성의 경계 허물기

      베토벤의 후기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 중 하나는 조성 체계의 해체다. 기존의 기능 화성 중심의 조성 진행은 더 이상 중심을 유지하지 않는다. 대신, 비기능적 전조, 반음계적 진행, 중복된 종지 회피 등의 기법이 사용되며, 이는 후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음악의 초석이 된다.

      예를 들어 현악 4중주 Op. 131의 시작 악장은 푸가(Fugue)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푸가는 조성의 중심 없이 진행되며, 반음계적 선율들이 중첩된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조성을 마치 ‘색조’처럼 다루고 있으며, 조성의 긴장보다 선율 간의 충돌과 감정의 흐름을 우선시한다.

      아래 차트는 Op. 131 제1악장의 주요 조성 이동 경로를 간략화한 것이다.

      [C#단조] → [E장조] → [A장조] → [F단조] → [B장조] → [C장조] → [C#단조]
       

      이는 전통적인 토닉-도미넌트 중심 구조를 완전히 벗어난 순환 구조이며, 청중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해체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4. 리듬과 시간의 철학화

      베토벤은 리듬을 단지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철학적 도구로 다루었다. 후기 작품에서는 리듬이 내러티브를 이끌고, 때로는 명상적 흐름을 생성하며, 기존의 박자 체계를 해체하기도 한다. 피아노 소나타 Op. 106 “Hammer klavier”의 서주와 푸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해당 작품에서 베토벤은 전통적인 4박자 구조 안에서 불규칙한 박자 변화, 동기 반복, 강세 이동 등을 통해 시간의 흐름 자체를 왜곡한다. 이는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나 메시앙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음 다이어그램은 Op. 106 제1악장의 리듬 구조를 시각화한 것이다:

      [서주: 느린 템포 - 자유 리듬]
         ↓
      [본악장: Allegro - 동기 반복]
         ↓
      [중간부: 박자 전환 + 겹박자 활용]
         ↓
      [재현부: 주제 회귀와 리듬 이중성]
       

      이처럼 후기 베토벤의 리듬은 구조를 해체하고,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5. 푸가와 대위법의 재정의

      형식 해체의 또 다른 측면은 대위법적 접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토벤은 후기 작품에서 바흐의 대위법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재구성했다. 현악 4중주 Op. 133 “Große Fuge”는 이러한 경향의 극단적 예로, 복잡한 푸가 구조와 강렬한 대조적 성부가 특징이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청중에게 “이해 불가능한 혼돈”으로 여겨졌으며, 오늘날에도 악보 분석은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이는 대위법이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사유의 틀이자 표현의 확장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음 표는 바흐의 전통적 푸가와 베토벤의 후기 푸가를 비교한 것이다:

      항목 바흐의 푸가 베토벤의 Große Fuge
      주제 처리 명확한 주제, 모범적 대위 비정형 주제, 분열적 전개
      대조 구성 성부 간 조화와 논리적 전개 불협화음 중첩, 공격적 진행
      종결 방식 정형화된 종지 열린 구조, 미완성 느낌
      표현 방식 종교적·논리적 감정적·철학적

      6. 악기와 표현 기술의 확장

      후기 베토벤은 기존 악기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이는 피아노, 현악기, 관악기 전반에 걸친 연주 기법의 발전을 유도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Op. 106에서는 당시 최신형 피아노의 음역 확장을 최대한 활용하며, 겹손 코드, 옥타브 병렬, 고속 스케일, 페달링 기법 등 모든 기술을 총동원했다.

      이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서 악기 자체가 새로운 언어로 탈바꿈하는 현상이었다. 결과적으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은 낭만주의 연주자들에게 도전 과제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고난도의 테크닉과 해석이 요구된다.

      베토벤의 후기 작곡 기법과 형식의 해체


      7. 결론: 해체의 미학,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다

      베토벤의 후기 작곡 기법은 단순히 고전 양식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 언어 자체에 대한 깊은 질문과 성찰이며, 표현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려는 철학적 실험이었다. 그의 형식 해체는 낭만주의뿐 아니라 현대 음악의 흐름까지 연결되며, 쇤베르크, 바르톡, 베베른 등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후기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과 현대를 잇는 다리이자, 형식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사유하게 만든 창조적 해체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규범을 깨뜨리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고, 그 파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음악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