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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낭만주의 시대, 조성의 문법을 다시 쓰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 언어를 계승하면서도, 그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척했다. 특히 조성(tonality)의 확장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있어 가장 전략적인 작곡 기법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기존의 장단조 체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감정의 강도, 서사적 구조, 상징적 의미 등을 음악 속에 담아내기 위해 조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은 조성의 중심을 의도적으로 흐리거나, 평행조, 이명동음 조성, 반음계적 진행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기법은 단순한 화성적 기교가 아니라, 음악 서사의 전개 방식과 감정의 입체화를 가능케 하는 장치였다. 본 글에서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조성을 확장하는 데 사용한 주요 전략들을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악 구조의 변화를 분석한다.
2. 반음계주의의 확장: 쇼팽과 리스트의 서정적 전조
조성 확장 전략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반음계적 진행을 기반으로 하는 전조 기법이다. 프레데리크 쇼팽은 전통적인 조성 내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반음계적 전조를 통해 ‘정서의 흐름’을 정교하게 조율했다. 그의 즉흥곡 Op. 66 “환상 즉흥곡”에서는 중간부에서 A♭장조에서 C♯단조로의 급격한 전조가 나타나며, 감정적 고조를 이끈다.
반면 프란츠 리스트는 조성 중심이 아예 해체된 듯한 음악적 구조를 창조했다. 순례의 해 2권 중 “물의 유희”에서 그는 반음계적 선율이 연속적으로 이동하며, 분명한 토닉 중심이 사라진다. 리스트의 음악에서는 조성의 기능보다는 조성의 색채감이 강조되며, 이는 후에 인상주의 음악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된다.
다음 표는 두 작곡가의 반음계 전조 방식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다.
작곡가대표 작품조성 확장 방식기능적 조성 유지 여부작곡가 대표 작품 조성 확장 방식 기능적 조성 유지 여부 쇼팽 즉흥곡 Op. 66 감정 전개에 따른 순차 전조 O 리스트 물의 유희 (Les jeux d'eau) 자유 전조, 중심 모호화 △ (부분 유지)
3. 이명동음 조성과 모호한 중심: 슈만의 감정적 중첩
로베르트 슈만은 조성 확장의 전략으로 **이명동음 조성(Enharmonic Modulation)**을 즐겨 사용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동일한 음을 서로 다른 조성으로 해석함으로써 전혀 다른 정서를 환기시키는 장치가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피아노 소나타 2번 Op. 22에서는 G♯단조가 A♭단조로 해석되면서, 낭만주의적 심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러한 기법은 조성 자체를 하나의 ‘정서적 장면 전환 도구’로 바라보게 만든다. 조성은 더 이상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 따른 배경 조명처럼 기능한다. 슈만은 이명동음 조성과 함께 다조성적 분위기를 암시하며, 낭만주의 특유의 감정적 중첩성을 극대화했다.
다음 다이어그램은 슈만이 활용한 조성 전환의 흐름을 시각화한 것이다:
[C장조] → [A단조] → [F♯단조] ↔ [G♯단조 ≈ A♭단조] → [E♭장조]이 흐름은 논리적 전개보다는 감정의 연속성과 상징성에 더 가깝다.
4. 전통 형식 속의 조성 파열: 브람스의 내면화 전략
요하네스 브람스는 낭만주의 후기의 작곡가로, 고전 형식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조성의 확장을 꾀한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종종 '보수적'이라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구조 안의 실험을 통해 조성적 모호성을 만들어낸다. 교향곡 제4번의 1악장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지만, 주제 전개부에서 조성의 중심이 잠시 사라지며 ‘혼란의 구간’을 의도적으로 구성한다.
브람스는 주제 발전을 통해 조성적 긴장감을 쌓아 올리되,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낭만주의 특유의 ‘감정 폭발’과는 달리, 내면화된 조성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베토벤적 대위법과 슈만적 감정성을 절묘하게 접목한 조성 활용이 드러난다.
다음 표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1악장의 전개부에서 나타나는 조성 변화 예시다:
구간 조성 설명 제시부 E단조 기본 조성 전개부 1 G장조 관계조 전조 (평행조) 전개부 2 B♭장조 예외적 전조 (비기능적) 재현부 E단조 조성 회귀
5. 조성 해체의 전조: 바그너와 말러의 장대한 스케일
리하르트 바그너는 낭만주의의 조성 확장을 궁극적으로 해체에까지 이르게 한 작곡가다. 그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에서는 '트리스탄 화음(Tristan chord)'이라 불리는 독창적인 불협화음이 등장하며, 이 화음은 명확한 종지를 지연시킴으로써 청자에게 영속적 긴장을 전달한다. 이는 조성 해체의 전초이자, 아널드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한편 구스타프 말러는 대규모 교향곡 안에서 복수의 조성 체계를 병렬적으로 사용했다. 그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은 장단조가 공존하고, 한 악장 안에서 다수의 중심이 이동하는 특징을 가진다. 말러에게 조성은 더 이상 지배구조가 아니라, 표현과 상징의 장치로 기능한다.
다음 차트는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에서의 조성 흐름 요약이다.
c단조 → A♭장조 → E장조 → C장조 → c단조 → E♭장조이는 조성의 일관성을 넘어서, 복합적 감정과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6. 결론: 낭만주의 조성 확장의 유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조성 확장 전략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의 표현력 확장과 정체성 탐색의 과정이었다. 쇼팽의 서정적 전조, 슈만의 이명동음 해석, 브람스의 내면화된 구조, 바그너의 화성 해체, 말러의 상징적 병렬조성 등은 모두 조성을 감정과 서사의 언어로 진화시켰다.
이러한 전략들은 20세기 음악의 핵심적 출발점이 되었고,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메시앙 등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조성은 더 이상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선택과 해석의 유연한 도구가 되었고, 낭만주의는 그 가장 극적인 실험실이었다.
[작곡가별 조성 확장 전략 비교 차트]
작곡가 대표 전략 대표 작품 조성 확장의 특징 비고 프란츠 리스트 반음계적 화성 진행
조성 모호성 활용《파우스트 교향곡》 조성 중심성 약화, 유동적 전조 바그너에 영향, 후기 낭만으로 이행 리하르트 바그너 무한선율
연결 동기
전조 반복 사용《트리스탄과 이졸데》 장기적인 긴장 유지를 위한 조성 유예 현대 조성 해체의 선구자 요하네스 브람스 전통 화성 + 중층적 전조 구조 《교향곡 1번》 클래식적 구조를 바탕으로 한 조성 확장 고전 형식 유지 구스타프 말러 다장르 혼합
장면 전환적 전조 사용《교향곡 2번 “부활”》 급격한 조성 전환, 대조적 음향 블록 활용 후기 낭만에서 현대음악으로 가는 교두보 세자르 프랑크 순환형 형식
교회 선법 차용《d단조 교향곡》 중세 선법과 혼합된 낭만적 조성 확장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 클로드 드뷔시 모드(선법), 전음계
펜타토닉 사용《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조성 해체에 가까운 음색 중심 작법 인상주의, 현대음악 영향 -> 차트 해설
- 대표 전략: 작곡가가 즐겨 사용한 조성 확장의 기술적 특징.
- 대표 작품: 그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음악.
- 조성 확장의 특징: 조성 해체를 향해 가는 정도와 방향을 설명.
- 비고: 음악사적 의미나 다른 작곡가와의 연계성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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